대중문화 바로보기 <제 9회 서울 여성영화제> ‘여성 , 소수자의 목소리로 말하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자신의 목소리로 주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기존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이자 아름다운 변혁

지난 4월 5일, 신촌 아트레온에서 서울여성영화제가 열렸다.
매년 기록적인 관객 점유율과 다양한 섹션, 풍부한 소재로 영화제 중에서도 내실 있는 행사로 꼽혔던 서울여성영화제는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는다. 이 축제는 잊혀진 여성 영화인의 역사를 되찾고, 여성들이 겪는 사회문제와 아시아, 태평양의 다양한 영화들을 조명했던 1997년 1회 여성영화제부터, 해마다 양적으로뿐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기존 한국영화계의 역사는 남성감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히 편향된 구조를 띠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계의 남성대표성과, 가부장적 사회의 면면들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90년대 이후, 여성문제를 다룬 작품과 여성감독의 약진으로 몇 편의 여성영화들이 주목받기는 했지만, 지난 2006년 충무로 영화 중 여성감독의 작품은 단 한 편에 불과했다. 영화계의 전반적 침체와 스크린 확보의 어려움, 몇몇 대형 흥행영화의 독점적 구조, 예술계 자체의 남성중심성 등이 여성예술인들의 활동에 무수한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여성영화제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남성 중심적인 사회와 그 안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여성문제를 섬세한 시각으로 다루며,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 도전한다. 특히 올해 서울여성영화제는 ‘여성, 소수자의 목소리로 말하다’라는 주제로 ‘소수 안에서의 연대’를 모색하고 동시에 ‘소수자들로 이루어진 여성’,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는 소수자들’에 주목한다.
민족, 국가, 남성, 그리고 정상과 주류의 관습에 얽매인 배타적 사회로부터, 인종·국적·젠더·연령 등으로 분류된 소수자들이 자유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기존 사회에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자 아름다운 변혁이다.
지난 1월 개최된 ‘이주여성이 만드는 여성영화 제작 워크숍’에서 시작하여, ‘이주여성 특별전: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다!’와 ‘제국과 여성’ 섹션의 작품 상영, 그리고 ‘제국, 지구화, 아시아 여성들의 이주’라는 주제로 준비된 국제포럼은 세계화와 서구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는 세계 속에서 아시아 여성들의 정체성을 소통하는 장으로 활약했다. 또한, ‘퀴어 레인보우’ 섹션에서는 여성퀴어들의 사랑과 상처, 그리고 삶 자체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룬 상영작들을 만날 수 있었다. 29개국 1백 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은 브라질의 타타 아마랄 감독 <안토니아>로,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네 명의 흑인 소녀들이 가난과 쇼비니즘,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적 현실에서 힙합그룹 ‘안토니아’를 결성해 자신들의 목소리와 내면의 힘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29초마다 한번 씩 여성강간 사건이 발생하는 남아프리카의 사건을 담은 <레즈비언 혐오사건>은 흑인 레즈비언들을 노린 강간과 편견의 경험, 그리고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강인함과 서로에 대한 배려를 담고 있다. 영국 노동자 계급의 여성과 체코 이민자 여성이 이주, 인종차별, 여성폭력을 넘어 사랑에 빠지는 <지포> 또한 많은 여성관객들의 감동과 지지를 받았다. 한국 여성감독들의 단편들도 주목된다. 여성영상집단 움의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는 성 정체성을 고민 중인 세 명의 십대 레즈비언들이 셀프 카메라로 직접 찍은 세편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이다.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긍정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는 최진영 감독의 <오버 더 레즈보우>는 특유의 발랄함과 경쾌한 연출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여성,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싣는 것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제 9회 서울여성영화제, 폐막의 그날까지 아름답고 자유롭기를.
*9회 서울여성영화제는 4월 12일까지 신촌 아트레온에서 계속된다.

이진주(국문·4) pearl2891@hanmail.net
이진주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