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77

호모포비아 박멸프로젝트：이반검열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그 시시한 틀에 갇혀 살진 않아’


동성애 혐오병을 치유하지 못한 환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픈 다큐멘터리

지난 2005년 MBC 뉴스투테이 ‘현장 속으로’는 “‘이반’ 문화 확산”이라는 제목으로 10대 동성애자들에 관한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이 방송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를 드러내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반’이란 용어가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스스로를 칭하는 ‘일반’과 다르다는 의미의 개념임에도, “이성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오도하는 등 동성애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지 못한 채 보도를 했고, 10대 이반 문화가 확산되고 있어서 우려가 된다는 논조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의 존재는 특수한 경우나 병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심의기준에서 ‘동성애’ 조항은 삭제된 바 있음에도, 불과 몇 년 전까지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동성애’ 관련 키워드를 청소년 유해매체 및 금칙어로 설정했던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의 동성애 혐오증을 뿌리 채 뽑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영상집단 움의 ‘호모포비아 박멸 프로젝트’, <이반검열1>(2005)과 <out: 이반검열 두 번째 이야기>(2007)는 우리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다.
<이반검열1>은 학교 내에서 동성애자를 색출하는 부당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부당함을 교육해야 할 학교에서 오히려 동성애자들에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시혜적 시선을 넘어, 우리 사회의 편견이 저지르고 있는 무시무시한 폭력과 편견에 대해 ‘그들 자신’의 언어로 고발한다.
올해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이반검열 2: OUT>은 전편의 주인공인 ‘천재’와 새롭게 등장한 ‘초이’, ‘꼬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중학교 때 학교의 부당한 탄압 속에서 고통 받았던 ‘천재’가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겪는 복잡한 고민, 아웃팅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초이’가 느끼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 남들에게 결코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이 거짓처럼 느껴지는 ‘꼬마’의 이야기는 그녀들이 직접 만든 노래와 함께 절실한 목소리로 전해진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모든 것을 마음에만 담아두고 쌓아두는 법만 배워왔어.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어. 어리다는 이유로 한때라는 이유로. 우리의 존재는 잊혀지고 말았지. 하지만 우리는 여기 있어. 서툴지만 우리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우리들은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시시한 틀에 갇혀 살진 않아.”
천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힘찬 발걸음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초이’는 스스로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자각하고 긍정하게 된다. 꼬마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활동을 시작하며, 현실에서의 자립과 행복을 꿈꾼다. 그녀의 치유스토리는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소통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 주인공의 손에 쥐어진 카메라는 때로는 입이 되고 눈이 된다. 벽장 속에 박제된 채 견뎌야만 했던 시간들이 그녀들의 목소리에서 배어나온다. 차별과 억압, 고립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서 그녀들이 빼앗겨 온 ‘사랑의 권리’가 뼈아프게 느껴진다. 호모포비아로 가득 찬 한국사회에 던지는 그녀들의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당당하고 아름답다.
그녀들의 외침, ‘내 진실은 나만이 알아.’ 그 진실은 바로 ‘다름’에서 시작되는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일은 그렇게나 어려운 일일까? 아직 스스로의 동성애혐오병을 치유하지 못한 환자들에게, 이 다큐멘터리를 적극 권하고 싶다.
이진주(국문·4)
pearl2891@hanmail.net
이진주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