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바로보기 서평: 언니네방2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관계를 푸는 열쇠도 네 안에 있어”

자기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이다. 우리는 늘 관계로 인해 괴롭고 관계로 인해 기쁘다. 아무리 난해한 이론서나 복잡한 문법을 공부하는 것보다, 단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영화나 소설에서의 사랑과 이별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재이지만, 정작 내 삶에 닥쳤을 때는 조금도 식상하지 않다. 제대로 된 가족이나 애인, 친구가 없으면 불안한 세상이지만 정작 제대로 된 관계는 비현실적인 드라마에나 있는 것 같다. 삶이 순탄치 않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결국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남는 문제는 ‘관계’ 이기 때문이다.
기존 사회가 규정해 놓은 삶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싶은데도, 우리에게는 언제나 ‘정상적 삶’이 강요된다. 취직, 연애, 결혼, 출산과 돌봄 등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나 있을 법한 삶의 주기가 모든 관계를 억압한다. 온전히 그 주류에 속하지 않았을 때 겪는 외로움, 막막함 등은 자기 자신을 ‘잘못 살고 있는 것’ 처럼 주눅들게 한다.

지난 3월 말 출간된 <언니네 방2>는 이러한 ‘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성찰과 지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지난해 출간되었던 <언니네 방 1>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발화하기 어려운 여성들의 욕망과 상처, 용기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산했다면, <언니네 방2>는 좀 더 섬세하고 차분하게 ‘관계’의 어려움과 깨달음을 보여준다.
1부, ‘뒤늦게 깨달은, 그래서 새로 끄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는 서로의 존재가 상처였던 자매 이야기에서부터,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힘들었던 가족이 새롭게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친구의 비밀 앞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날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가장 좋은 관계는 영원한 관계가 아니라, 변화하는 관계라는 문구가 선명히 가슴에 와 닿는 그녀들의 경험담은, 우리에게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을 역설한다.
‘이렇게 살아보면 어때?’ 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새로운 장에서는, 연인과의 새로운 이별공식, 결혼하지 않고도 외롭지 않게 사는 법, 직장에서 비겁하지 않게 내 스타일 고수하는 방법 등 유쾌하고 통쾌한 그녀들의 삶의 비법이 결결이 묻어난다. 그녀들이 전수하는 연애의 비법은, ‘자신이 폭력적이지 않을 거라고 과신하지 말 것, 혼자 있고 싶을 땐 솔직하게 말할 것, 연인 사이라고 해도 자신이 상대에게 상처 줄 권리는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할 것’ 등등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전제한다.
이러한 삶의 노하우는 ‘혼자여도 좋고, 둘이면 즐겁고, 셋이어서 행복한 관계’ 를 지향하고 있다. 성폭력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러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민들, 이별로 끝난 동거에 대한 추억, 그리고 섹스에서의 오르가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언어로 이어진다.

이 책을 쓴 ‘언니네 사람들’은 여성들에게 획일화된 선택을 강요하는 한국사회에서, 용기 있게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된 가족, 친구, 애인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이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들은 우리가 했으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줄 아는 멋진 여자들이다.
지난 세계여성의날, 1회 비혼여성축제를 벌이고, 올해로 4년째 여름마다 ‘페미니즘 캠프’를 기획하는 사람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삶 그 자체로 보여주는 그들의 앞날이 주목된다. 그녀들은, 사는 대로 생각하기보다 생각하는 대로 살기를 추구한다. 언니네 사이트www.unninet.net 회원 5만명의 용감하고 지혜로운 여자들이 써내려간 내가 원하는 관계를 만드는 법, 한번쯤 그녀들의 페너지(페미니즘 에너지)를 음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언니네 방 2, 언니네 사람들 지음, 갤리온 2007>

이진주(국문·4)
이진주 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