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그렇다. 나는 대중문화와 영화를 말하려 한다. 바꿔 말하면 영화와 영상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우리시대 대중문화의 지형도를 조감하고 이슈를 공유하려고 한다. 글의 형식은 칼럼 내지 에세이가 될 것이다. 논리적 에세이를 겸한 자유분방한 칼럼….

이와 함께, 내용상 글을 읽고 나면 뭔가 배우는 게 있는 유용성의 측면에도 신경을 쓸 것이다. 그런데 바로 보기가 아니라 왜 비틀어 보기(읽기)인가? 인간의 삶과 문화, 특히 대중문화는 거의 양면적이며 양가적(兩價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허면, 바로 보기 위해서 오히려 비틀어 보고 거꾸로 보는 역설이나 변증법이 성립할 터. 가령,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바로서의 정신분석적 심리학의 시선, 특히 영화를 통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삐딱하게 보기’ 같은 욕망 가득한 입체적 시선도 비틀어 보기, 딴지 걸기의 한 종류가 된다.

본 연재의 글은 정치칼럼이 아니다. 하지만 매체에 글을 쓰는 행위는 결국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의 행위는 ‘정치적 글쓰기’ 쪽이 아닌, 상대적으로 덜 추상적이면서 조금은 더 농밀한 질감이나 현장감이 느껴질 것 같은 이른바 ‘저항적 글쓰기’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생각해 보라. 일반국민은 구멍가게에서 우유 한 곽을 훔쳐도 감옥에 가는데 억대 안팎의 뇌물을 챙긴 인사는 국회의원, 장관직에 나서고 수백·수천억대 탈세나 분식회계를 일삼은 재벌은 고작 선고유예·집행유예 정도로 풀려난다.

엄청난 거부이거나 거부의 아들이라면 인혁당 사건에 걸려들거나 영화 <오로라공주>의 아동성추행 살해범으로 체포될지라도, 드림팀 변호인단을 고용한 O. J. 심슨처럼, 살길을 찾지 절대로 그냥 죽지 않는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강동원’처럼 사형수가 되어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하진 않는다. 이러한 정황은, 사형제 폐지론의 강력한 논거가 되는 ‘극악범죄 예방효과 거의 없음’ 그리고 ‘조작된 증거 등에 의한 오심의 가능성’과 함께 폐지론의 한 축과 논거를 형성한다.

필자는 지금 죽음이나 사형제와 같은 아주 심각하고 어두운 예를 들어 윤리를 설파하는 등 도덕론이나 무슨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물과 인생의 양면적이고 양가적인 이치를 드러내 보자는 것인데, 극단적인 예를 듦으로써 그 전달효과가 커진다고 보아 좀 세게 ‘지르게’ 되었다.

비합법과 합법의 두 가지 종류의 살인 중 국가에 의한 합법적 살인, 곧 사형제도는 대중에게 있어 양가적일 뿐만 아니라 가치전도적이기까지 하다. 양가적이라 함은 애증, 질투, 요부(팜므파탈) 같은 어휘가 표상하듯이 대상에 대한 긍정(애착)과 부정(배척)의 모순된 가치 및 정서가 양립하며 충돌하는 상태를 말한다.

양면성은 철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볼 때 흑백 논리나 선악 구도 따위를 배척하는, 요컨대 형식논리적 이분법에 의한 일면성(평면적 관점)을 배척하는 합리적 근대주의(모더니즘)의 주요한 특징을 이룬다. 모더니즘은 사물이나 삶의 모순성·모호성과 경계불분명성을 인정한다. 탈-근(현)대주의라고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러한 인정이나 포용을 넘어 융합과 해체를 지향한다.

모더니스트들은 그러한 모순성을 인정하는 한편 인간이성의 능력으로 (의지적 실천을 병행하여) 모순을 해결하고 자연과 사회의 개조, 변혁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성을, 바꿔 말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성의 지표를 신뢰한 마르크스도 그런 점에서는 모더니스트였다.

양차대전의 비이성적 참상을 겪고 후기산업사회를 맞이하며, 모순의 공존·융합과 새로이 기성의 해체를 지향하게 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일면성, 단층성, 직선성이 아닌 다면성, 복층성, 선형성을 인식하고 축조해 왔다. 그들은 감성·주관 배제의 이성주의와 객관주의를, 안과 밖 그리고 주류와 비주류 등의 경계를 해체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본 내지 주류의 헤게모니 인정·옹호 여부를 둘러싸고서 우파와 좌파로 갈린다.

종합해 보면 성선설과 성악설, 이성론과 경험론, 문명과 자연 어느 일방의 배타적 성립이나 그 주장은 철없거나 비과학이다. 인간에게 선천성과 후천성, 유전자와 환경, 에로스(생의 충동과 약동)와 타나토스(죽음을 향한 충동), 이기심과 이타심의 요소는 전자 우위로 양립하면서 개인과 집단(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각각의 두 범주는, 필자가 보기엔, 개인차를 배제했을 때 대략 6:4(7:3) 정도의 전자 우위성을 지닌 채 상호 작용하고 길항하는 듯하다.

학자와 비평가, 연구자와 학도 등으로 이루어진 식자층은 일면 대중문화를 애호하거나 탐닉하면서도 그 강력한 파급력과 통속성 앞에서 문화 수준의 전반적 하향화를 우려한다. 고급문화는 산업미술(팝아트)은 물론 형식미에 집중하는 예술영화 등에서 종종 대중문화의 이미지와 표현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대중문화 역시 대중적 음악·소설·영화·연극 등 장르에 있어서 종종 고급문화의 미학과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흡수·활용하고 있다. 그러한 우려와 ‘이종교배’는 대중문화가 지닌, 내용과 형식상의 양가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곽영진(영화평론가, 문화정책 분석가)

곽영진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