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600만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숨 돌릴 틈이 없다. 취업난 속에서 누구보다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의 나날을 보내는 것이 오늘날 젊은이들의 초상이다. 그런 후배들에게 정상원(법학·98졸) 동문은 조금은 다른 생각을 전한다. <편집자 주>

지난 8일, 정상원 동문이 근무하는 서울 양평동의 자동차 공업사를 찾았다. 훤칠한 키에 소탈한 미소와 작업복이 잘 어울리는 그는 자동차 배출가스 검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자동차와 관련된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정 동문은 본래 검사를 지망하던 법학도였다. 98년에 학교를 졸업한 뒤 신림동 고시촌에 둥지를 틀고 4년을 보냈다. 사법고시의 문을 두드린 것은 재학 시절 시험 삼아 응시한 것까지 포함해 6번. 사법고시에 도전하던 4년 동안 학원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그는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집에서 방값 정도만 지원 받고 생활비와 학원비는 모두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었어요. 노래방, PC방, 만화방… 방자 들어가는 일은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아요. 공부 시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로 밤이나 주말에 하는 일들을 많이 했죠.”

고생하며 4년간 사법고시에 매달려온 정 동문은 여섯 번째 시험에서도 낙방하자 오랫동안 품어온 마음을 접었다. ‘장고생’은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3, 4년 정도만 도전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을 생각이었어요. 삼십, 사십 넘어서까지 고시에만 매달릴 생각은 없었죠. 아직 젊을 때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직 젊다고 생각했었지만, 30대에 접어든 그는 새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기에는 상당히 늦은 나이였던 것이다. 수십 곳이 넘는 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뿐이었다. 그렇게 또 3년이 흘러갔다.

“취직이 워낙 안 되다보니 뭐 하나 기술이라도 익혀뒀으면 좋았을 텐데 싶더라고요. 그 때 딱 자동차 관련 기술이 생각나더군요.”

하늘도 그의 생각을 안 것일까.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찾을 겸 정보지를 뒤지던 차에 우연히 한국폴리텍대학의 직업교육훈련과정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 기술을 배우자 마음먹은 바로 그때 그 방법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많이 두려웠어요. 인문계 출신인 내가 과연 기계 다루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주위에서도 모두 의아하다는 반응이었어요. 부모님께서도 반대는 안 하셨지만 걱정을 많이 하셨죠.”

뜻을 품었고 그것을 이룰 비책도 얻었으니 남은 것은 실행에 옮기는 것 뿐. 직업교육훈련을 받는 1년 동안 그는 자동차 정비 기술을 익히는 데 ‘올인’했다. 수업은 아침 9시에 시작해 저녁 5시면 끝났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고 늦은 밤까지 남아 공부를 하거나 야간반 수업까지 청강했다. 그야말로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수업은 실습 위주. 이론은 모두 스스로 공부해야 했다. 지난날 법조항을 공부하며 치렀던 전쟁을 이번에는 수천가지가 넘는 자동차 부품, 생소한 공구들과 벌여야 했다. 정 동문은 ‘할 수 있을까’ 대신 ‘해보자’는 마음으로 1년간 최선을 다했으며, 졸업할 때에는 자동차검사기사, 자동차정비산업기사 등 6개의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그동안 기울인 노력을 인정받아 노동부장관상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바로 지금의 직장에 취직했다. 정 동문은 취업 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 열심이다. 검사원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정비팀 동료들의 어깨너머로 정비 일을 배우고 있으며, 얼마 전부터는 범위를 넓혀 자동차보험 관련 업무를 맡는 손해사정인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3년쯤 일을 더 하고 외국에 나갔다 올 생각입니다. 외국에서는 정비 일을 하는 사람의 대우도 나쁘지 않고 해서, 배운 재주를 살려 돈을 좀 모아 돌아올 계획이에요. 돌아온 뒤에는 손해사정인(보험사고로 인한 손해액 및 보험금의 사정 업무를 담당)으로서 일하려고 합니다.”

한 발 먼저 험난한 취업의 벽을 마주했던 정 동문은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아니다 싶으면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시도해 본 다음,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들을 찾아 시도해 보는 겁니다.”

새로운 시도를 통해 스스로 삶의 전환점을 마련한 그의 경험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또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에 정 동문은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 서울지역 국민 대표로 초청받기도 했다. 이는 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말한 “영리한 여우는 굴을 여러 개 판다”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신봉석 기자 radenian@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