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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숙 교수 (인재개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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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을 가득 채운 새내기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문득 시간을 거슬러 내가 대학 1학년이던 그 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교복을 벗고 차려입은 사복이 어색했던 5월 축제 가운데서 10여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같은 학교에 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그리고 은근히 서로에 대해 ‘공부 열심히 했구나…’ 하는 속마음을 감추면서, 동창의 기숙사에 놀러가게 되었다.
그의 책꽂이를 가득 채운 빽빽한 책들을 보면서 느꼈던 충격이 아직도 선명하다. 삼월에서 오월사이 그 긴 듯 짧은 시간에 그 친구는 정말 많은 책을 읽었었다. 대학 생활에 대하여, 시국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그러나 차분하게 이야기하던 친구와의 대화 이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나도 모르게 그 친구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들을 꺼내며, 대학 1학년 1학기, 사람은 그가 읽는 책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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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학년이 된 새내기들은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 사이에서 헤매게 된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대학생다운 깊이가 있는 책으로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 친밀성의 구조변동』을 권한다.
사랑은 이제 과학적으로 분석된다. 코넬 대학의 신시아 하잔 교수에 의하면 사랑은 6500만 년 전에 진화를 시작한 뇌의 미상핵과 도파민과 세로토닌 같은 화학물질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과학이 사랑을 뇌의 작용이라 분석했다면 사회학은 사랑을 사회적 관련성으로 분석한다. 기든스의 이 책은 사회학으로 분석한 사랑의 의미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이 그리고 나의 사랑이 분석되는 방식은 전혀 주관적이지 않다. 사랑은 나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양상의 변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란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페미니즘의 구호를 불러오지 않더라도 사랑은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다. 성은 역사적으로 규정되어 왔으며 사회적 제도의 장 속에서 자리 잡고 있다.
여성잡지를 뒤적이며 나의 이상형 찾기 사다리를 해보는 것도 가끔은 재미있지만,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독서는 대중지에서 찾을 수 없는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가능하게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대한 분석,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는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서 가능해질 수 있다.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전혀 가볍지 않다. 좌파 사회민주주의와 우파 신자유주의를 아울러 제3의 길을 주창한 기든스는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좌우의 이념적 경쟁이 극심하던 90년대에 기든스의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한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많은 저서가 번역되었으며 이 책은 그 중의 하나이다.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은 성에 대한 전통적 관점도 좌파적 관점도 수용한다. 페미니즘의 극단적 주장까지 좌표를 만들어 가면서 수용하는 기든스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관계가 어떠한 의미로 형성될 것인가를 분석한다.
‘에로티시즘’이란 단어 때문에 다소 부담스럽다면 ‘친밀성의 구조변동’이라는 부제에 주목하기 바란다.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는 인간관계의 거대한 그림 안에서 사랑은 기든스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규명되고 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사려 깊은 사람을 만든다. 지식의 축적과 삶에 대한 통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책을 찾는가?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중의 하나이다. 한 권, 한 권 늘어가는 당신의 독서목록은 당신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태숙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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