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대중문화의 최고 흥행코드는 무엇일까? 흔히 입에 올리는 재미나 쾌락, 웃음이나 섹스이런가? 판매율과 점유율, 또는 시청률 등의 수치로 표현되는 공연·전시·영화·드라마 등 문화상품의 흥행기획은 아무래도 대중의 욕구가 그 요체이다. 대중의 호응이니 지지니 하는 말은 흥행(興行)의 다른, 점잖은 표현에 불과하며 대중의 욕구란 크게 보아 재미 또는 감동의 추구로 집약된다.

흥행(entertainment/show/box-office)은 이렇게 대중의 욕구와 직결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문화 전반의 이러한 ‘흥행’ 추구, 곧 문화의 상업화가 큰 문제로 된다. 흥행은 급변하는 사회상의 문화적 거울이다. 그래서 더 큰 관심을 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감동보다 재미에 민감한 것이 대중의 속성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그 편중이 너무 심하다. 그리고 요 수년간 재미의 여러 종류들 중에서도 웃음(해학)에 대한 선호가 참 왕성해졌다. 영화·방송·연극 등 대중문화에서 코믹한 것에 대한 욕망이 어찌나 강한지 섹스(관음증)나 액션(폭력묘사)에 대한 욕망을 압도할 정도다.

그러나 섹스보다 더 넓은 의미로서 무릇 사랑의 감정과 방식에 대한 관심과 욕망도 그 정도와 수위를 더해왔다. 그래서 최근에 한국사회의 성·결혼·가족 문제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 드라마와 많이 만나게 되었다. 우선, 혼전동거에 관한 한 부동의 ‘대표선수’라 할 영화 <싱글즈>와 방송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애정의 조건>이 떠오른다. 혼외정사에 관한 한 <바람난 가족>과 <바람피기 좋은 날>, <내 남자의 여자>와 <조강지처 클럽> 등이 있다.

이러한 ‘불륜극’의 히트는 기실 ‘불륜’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나 묵인의 확산 추세를 의미한다. 심지어 가족제도, 일부일처제에 대한 회의와 도전을 함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은, 수년 전부터 삶의 질에 대한 문제와 성적 자아의 실현 그리고 가족내부(부부간)의 평등 문제를 본격적으로 따지게 된 급변하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와 욕망에 대한 탐구
인간의 가장 원천적인 욕구(욕망)는 무엇일까? 식욕과 성욕 그리고 휴면욕, 배설욕, 종족보존욕, 활동욕이다. 생활체들에게는 이 6대 생리·생물적 본능 다음으로 자기보호와 애착, 투쟁의 동물적·심리적 본능이 발동된다. 그 다음으로는, 일부 고등동물에 한하여 놀이, 권력, 모방, 경쟁 등의 후천적인 기본욕구가 작동한다. 마지막 단계로는 관찰학습, 직립보행, 도구사용, 언어를 매개로 한 인류적·문화적 존재로서의 욕구가 형성되었다.

이처럼 인류에겐 ‘생활’과 ‘에로스’ 그리고 자유·변화·공생과 언어·오락·예술·권력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기본 욕구들이 생성되었다. 장난, 놀이, 오락은 논다는 것(유희) 자체로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 그리고 장난이나 놀이의 욕구는 두뇌가 발달한 고등동물, 특히 영장류에겐 ‘기본적’인 것이다. 그들은 또한 반복에서 오는 따분함이나 싫증, 곧 권태를 느낀다.

더욱이 인간은 타고난 놀이욕구를 통해 재미를 추구한다. 저 6대 본능과 도피·애정·투쟁 등의 욕구 다음으로…. 인간에게서 놀이나 오락을 향한 원초적 욕망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바꿔 말해 변화를 추구하는 욕망과 자연히 결부된다. 이 놀이와 변화의 욕구는 식욕, 성욕 등과 중첩되면서 이것들을 배고픔과 리비도의 해소 차원을 넘어선 쾌락의 형태·단계로 끌어들인다.

특히 섹스는 에로스이든, 그 반대의 타나토스이든 성감각 이상의 성감정 충족 그리고 유희(재미)와 변화의 형식 속에서 용해된다. 높은 문화의식과 윤리에 이끌리지 않고서는 이 변화와 유희 지향, 곧 새것(새 경험과 새 파트너) 꿈꾸기와 그 실천을 억제할 수 없다. 불행히도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다혼(多婚)이 자신의 유전자에 훨씬 잘 맞게 태어났다.

변화와 유희를 추구하는 성(性)
인간이 금수와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욕망과 쾌락의 기본성질에 있지 않고 문화와 도덕의 유무에 있다.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부유층·권력층이 ‘주도하는’ 사회적 양극화인데, 부와 권력은 물론이고 쾌락의 대상과 기회를 합법적으로 독·과점해 버리며 소외를 양산하는 범사회적인 현실이 심각성을 더한다. 우리가 약육강식의 제반 ‘폭력’을 추방하고 부와 권력과 쾌락의 독과점·세습을 억제하고자 한다면, 문명사회에서 도덕과 법이 부의 무한추구를 포함한 개인의 탐욕 위에 ‘군림’하도록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원초적·개인적 기본욕망과 사회적 기본욕망에 대한 주류문화와 법의 ‘군림’은 제한의 차원을 넘어선 억압, 말 그대로 군림의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특정 사상과 애정방식(사회주의와 혼외정사·동성애 등)에 대한 금기와 처벌, 18(19)세 이상 성인용 출판·영상물(그 ‘과다한’ 성·폭력 표현)에 대한 금기와 처벌, 남성전유의 호주제에 의한 여성 및 이혼가정 자녀에 대한 법적·신분적 차별이 그렇다(그랬다).

법, 감옥 등 국가의 강제력이나 폭력은 타인을 강제·강요·기망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배제되거나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 부작용은 자유사회가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그런 점에서 지구촌 유일, 유이의 고루한 국가보안법, 간통처벌법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욕망과 쾌락의 추구는 존중되어야 한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추구되는 모든 행복과 쾌락은 존중되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도 인간(류)의 동물적, 문화적 존재원리에 천착한 법철학에 그 바탕을 둔 것일 게다. 당사자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욕망과 쾌락의 추구, 이른바 사생활은 특히 더 존중되어야 한다. 도덕적 비판을 넘어선 법의 금지와 처벌은 얼마나 탈(脫)문명적인가?

곽영진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