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전체에 걸쳐 발생한 폭력의 문제를 문화인류학 차원에서 다룬 르네 지라르의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문학과지성사, 2004)는 매우 묵시록적이다. 우선 인류가 서로 단결하여 문화를 구성하기 위해 끝없이 희생양을 발견하여 처단해 왔다는 폭력의 역설이 그러하다. 겉으로는 이성적이고 절제된 듯해 보이는 문화인의 내면엔 야만적인 폭력적 제의에 대한 갈망이 잠재되어 있고, 이것이 중세 마녀사냥이나 이교도 박해, 그리고 현대 나치즘의 홀로코스트 만행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라르에 따르면 우리 인류는 결국 누군가를 비인간으로 지목하여 끔찍하게 처단함으로써 심리적 평온을 되찾곤 했던 어리석은 존재들이었으며 그런 점에선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파우스트들이었던 셈이다. 이상과 같은 문화적 폭력의 저변에는 모방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모방 욕망이란 애초부터 구체적 대상을 갖지 않는 욕망이다. 욕망의 대상은 단지 타인이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부러움, 질투, 경쟁심에 의해 발견될 뿐이다. 이를테면 이웃의 아내는 그녀의 남편에 의해 욕망의 대상으로 격상될 때 나의 탐욕의 대상으로 포착된다. 즉, 인류는 남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자기도 가지고 싶어 한다. 같은 논리로 우리는 타인들이 욕망하는 행위에 회오리에 휩쓸리듯 동조하여 손쉽게 한패거리로 변화하곤 한다.

누군가 억울한 희생양에게 첫 번째 돌을 던지면 군중들은 하나둘 따라서 돌을 던져대기 시작하고 이윽고 성난 무리들은 밑도 끝도 없는 분노와 격정에 사로잡혀 터무니없는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폭력은 강자가 약자에게, 다수가 소수에게 가하는 물리적이자 심리적인 일방적 가해 행위다. 그리고 폭력이 점화되어 번지는 순간 강한 다수에게 약한 소수인 희생양은 그저 물건에 지나지 않게 보인다.

폭력은 자꾸 더 큰 폭력을 불러내고 이 모방(폭력)의 회오리는 끝장을 볼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 우발적으로 선정된 희생양은 이렇게 한 마리의 짐승, 혹은 인류를 위협하는 악마나 바이러스로 간주되어 철저한 응징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맹목적인 폭력의 만행이 희생양의 죽음으로 마무리 지어질 무렵, 군중들은 자기 내부에 잠재해 있던 문화의 불안, 살인 충동, 또는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억누르고 있던 자연의 본성인 공격본능을 카타르시스하고 편안한 안정을 회복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또다시 서로서로 단결하여 어깨동무 한 채 따스한 자기 가정으로 뿔뿔이 돌아간다.

지라르는 인류가 저지른 역사적 만행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명령하고 있다. 최초의 폭력과 복수, 복수에 대한 또 다른 피의 보복들을. 종교나 이념, 인종과 성의 차이를 구실로 저질러졌던 그 숱한 잔인함의 역사는 실은 아주 사소한 빌미로부터 구성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대중들의 의심을 사게 되고, 운이 없게도 마을에 역병이 돌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행의 원인을 기필코 찾으려 들게 된다.

그들은 정말 우연히 이상하게 옷을 입는 사람에게 혐의를 두게 될 것이고, 이 혐의는 누군가에게 역병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기만을 내심 바래왔던 사람들에겐 확신으로 발전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소리 지르며 첫 번째 돌을 던지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중은 기꺼이 이 악마를 처단하기 위해 모여들어 참혹한 살인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은 역병 발발의 원인을 찾아내어 복수했다는 희열에 환호할 것이다. 다수의 희생양이 되기란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어리석은 희생의 제의를 통해 누군가를 ‘왕따’시켰던가? 왜 우리 손에는 예수에게 돌을 던진 그 추한 모방 욕망의 기억이 아직도 못처럼 박혀 있는가? 당신들이 알고 있는 누군가를 등 뒤에서 험담할 때, 그 스캔들의 주인공이 악의 화신이라고 공모하고 싶어질 때, 제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던 그리스도의 말씀을 떠올려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