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9일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대통령 위촉 민간심의기구로 법적 출범을 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5월 초까지 두 달이 넘도록 아예 위원 구성조차 못하여 방송과 통신 심의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였다. 관련법과 기구는 존재하는데도 조직 구성이 늦어지면서 심의 및 모니터링 기능이 아예 중단된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요즘 방송 영역의 심의 문제를 보면, 고작 심야방영 시간대 편성으로 제한할 뿐 성인인증 블로킹이 따로 없는 케이블TV 프로그램의 지나친 선정성이 통신 정보의 그것과 함께 문제시되고 있다. 물론 통신(인터넷) 정보의 선정성은, 양에 있어서는 범람의 수준이고 질에 있어서는 초강력 하드코어를 포함하는 수준이어서 전자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방통심의위원회는 방통위원회의 산하기관도 아니고 “정권 및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이란 정치논리 밖에 있는 민간심의기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여·야)는 처음엔 방통위원회 문제 선(先)해결이라는 이유로, 나중엔 여·야의 국회 추천 지분 다툼으로 방통심의위원 위촉/구성을 마냥 지체시켜 버렸다. 책임 있는 어른들과 국가사회의 일면을 웅변해 보이는 사례이다.

방통심의위원 9인에 대해 대통령추천 몫 3인과 국회추천 몫 6인을 포괄하여 여 대(對) 야의 추천 지분을 6대 3으로 보느냐 5대 4로 보느냐, 이 문제(1명의 지분)에 대한 당리당략의 절충 하나만 가지고도 한 달 이상을 지체함으로써 심의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한 것이다.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하는 일이 보통 이렇다.

애초부터, 2월말의 방통법 졸속 개정과정에서 구법과 구조직(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대한 경과규정을 부칙에 삽입하지 않은 국회 방통특위 의원들과 정통부 관료들의 부주의와 태만이 화근이었다. 어쨌거나, 만시지탄이지만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등 3인이 지난 5월2일자로 국회 정당(여·야) 추천 몫의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추천됐다.

이로써 두 달 이상 공전해온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구성이 완료되게 됐다. 위에 언급한 인터넷상의 청소년 규제, 곧 접속의 체계적 차단·관리는 일부 중소 전문사이트, 특히 P2P·웹하드·UCC 등 신유형의 매체들에 대한 책임과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한한 인터넷 공간에서 음란물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기술력으로나 인력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때문에 가정과 학교에서 청소년의 PC 사용에 관심을 갖고 감독할 수 있도록 지도·계몽과 홍보 활동을 강화하는 등 사회문화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물론 (재미와 감동이 있는) 성교육 및 양성평등교육의 강화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성인 인증제도의 2중적 강화를 위시한 이와 같은 청소년보호 정책과 방식은 표현의 자유, 어른의 볼 권리, 규제의 최소성·명확성 원칙과도 양립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규제 위주의 정책은 이 ‘양립’을 압박하고 심지어 위태롭게 한다.

과잉·중복 규제 등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역시 인터넷 이용문화에 대한 계도와 교육, 매체들의 자체정화 활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참고로, 한국의 법원 판례와 심의 실정을 놓고 살피면, 음란물(포르노물)은 성교 및 유사성교가 성기·음모의 노출과 함께 이루어지는 문자·영상 등 하드코어물이 있고, 성교 없이 성기·음모의 자연노출이 등장하는 소프트코어물이 있다.

이 두 가지의 배포는 구미 등지와 달리 각기 불법으로, 형법의 음란물반포죄 등으로 규제된다. 어른에 대해서는 소프트코어물의 배포도, 청소년들에 대해서는 여자의 가슴 노출이나 팬티가 입혀진 신체국부의 집중적 강조-배포도 규제의 대상, 종종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반인륜적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 관점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포르노 따라하기' 놀이가 유행처럼 번져 결국 집단성폭력 사태로 이어지고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언론, 그리고 인터넷 여론공간이 들끓고 있다. 아무리 냄비증세·망각증세가 심한 한국 사회와 대중매체이지만, 동종 사건을 둘러싼 논의열기와 성찰이 반짝하거나 실종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번 초등학교 성폭력사건이 형사 미성년자(20세미만), 그 중에서도 책임무능력자인 15세 미만의 아이들이 저지른 행위라고는 하나, 이 또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의) 행위”에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해 중학생 두세 명과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십수 명은 나이가 어리고 철이 없는 아동/소년들이어서 형사처벌이 면책되거나 유예된다.

법률(법원)은 15세 미만 중 의사(意思)무능력자 외의 13·14세 소년이 저지른 범법, 특히 반인륜적 범법 행위의 경우 책임성이 조각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13·14세인 자, 그 중에서도 소년 형사범에 대하여는 ‘경우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그들을 책임무능력자, 곧 불법행위무능력자로 보지 않고 격리·구치(拘置)하여 소정의 책임을 묻는 추세이다.

이 유(幼)소년들은, 영화 <올드보이>의 오광록과 최민식이 한 대사 “아무리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도 최소한 살 권리는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 이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우선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의 보호·관리 속에서… 나중엔 ‘악몽’과 ‘상처’, ‘관리’에서 벗어나 정상적 시민으로 잘(?) 살아갈 권리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13세 미만의 의사무능력자를 포함하여 어린 아이들이라는 관점, 또 극히 부실한 성교육·양성평등교육의 ‘피해자’라는 관점을 수용하면 가능한 얘기다. 더욱이 불법·유해 및 음란·폭력의 ‘바다’ 인터넷으로부터 청소년-어린이를 성실하고 효과적으로 차단·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어른들과 국가사회에 있다면, 그들에 대한 ‘피해자’ 관점은 더 설득력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