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 전파위험이 급속하게 한국사회 최대의 이슈로 떠올랐다. 좌파나 386세대가 중·고생을 선도(先導)하고 선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역이었음을 확인하게 된 필자는 무척 놀랍고 당혹스럽다.

어린 학생들, 특히 여학생이 좌절감과 침체에 빠진 진보·좌파와 386세대를 온·오프라인 양무대로 견인해 냈다니 말이다. 일찍이 역사에 이와 유사한 패턴은 없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대사건

나의 이런 판단과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 분이 있음을 잘 안다. 나 역시 고등·중등 여학생을 대면하여 “너희 학교에 전교조 선생님이 많니? 촛불집회에 나가라고 하시던?” 하며 그들의 판단력과 자발성을 회의하여 자꾸 물었던 사람 중의 하나였으니까.

회의하면서도 관심이 많은 사람에겐 촛불집회 등의 현장 ‘직접’ 취재가 최상의 궁금증 해소책이겠지만, 그게 곤란하면 여고생이나 그 부모들 수명을 설문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집단급식을 통해 자신들부터 직격탄을 받게 될 것이란 절박감과 분노, 기성세대와 정부·언론 일체에 대해 갖게 된 13-18의 불신감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것을.

‘쇠고기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한다는 우파 정권과 신문언론은 ‘괴담’과 ‘유언비어’ 유포·확산의 책임을 방송언론과 인터넷(포털), 특히 MBC와 다음에 전가했다. 판단능력이 미약한 중고생 등에게까지 허위사실이 확산된 데에는 이들 매체와 일부 연예인의 무책임한 보도, 발언, 선동이 큰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최시중 위원장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번 쇠고기 협상의 경우 언론홍보나 대응에 미흡했다. 방송통신심의위가 곧 활동을 시작하게 되지만 사후심의가 아닌 사전에 체계적으로 홍보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며 권한 밖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방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결국 국정홍보 대책을 논의했다”며 “법을 무시하고 소관 업무도 분별하지 못하는 행동으로서 방통위를 정부 홍보기구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하고 경향신문이 이를 인용 보도하였는데,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정확한 법 해석이며 분석이다.

왜냐하면 위원장을 포함한 방통위원은 정치활동에 관여할 수 없고(‘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9조), 아울러 그가 지적한 언론보도 내용은 콘텐츠 심의 영역으로서 자신이 관장하고 있는 방통위의 소관이 아니라 민간독립기구인 방통심의위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지적 우월주의와 엘리트주의의 거절

또 지난 3일 방통위가 포털업체 다음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포괄적' 댓글 삭제 요청도 소관 업무가 아니며 또한 아직도 구성이 안된 방통심의위가 조만간 방통위 요구를 이어받아 그러한 요청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는 개별 표현물(통신정보)에 대한 사안별 내용심의를 벗어난 정치적이고 포괄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즉, 명령·처분 등의 포괄적 위임 금지(헌법75조)에 해당될 수 있다.

방통위 네트워크윤리팀장은 7일 "유언비어나 허위사실 유포 등과는 다르게 정보통신망법에는 사이버명예훼손을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며 "일단 임시조치로 관련 게시물과 댓글에 대해 포털 측이 자율적으로 블라인드(화면상 안 보이도록 차단하는 조치)를 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사이버명예훼손조정위원을 역임한 필자가 보기엔 정치적이며 포괄적인 사전 조치, 곧 월권·위법 행위가 될 수 있다.

우선, 방통위가 통신 영역의 주무부처이긴 하나, 심의대상에 대한 심의 권한 없는 자(정부조직)의 심의 밖 규제가 되어서 문제이다. 더불어, 공인에 대해 행한 공익성을 띤 정치적 비방은 통상 명예훼손 죄에 해당되지 않는, 즉 구성요건은 되지만 조각성이 상실되는 점도 문제이다.

두 달 반에 걸친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를 딛고서 수일내 구성될 방통심의위원회. 조만간 그 위원들이 휘두를 '칼'로 인해 온라인은 어쩌면 한바탕 난리가 날 것 같다. 심의위원들이 혹여 정치 논리와 속전속결의 다수결 원리로 심의·의결하며 대대적인 삭제 조치에 나설 가능성. 필경 차분한 업무 파악·적응 기간도 갖지 못한 채 충분한 회의·토론의 기회, 시간을 확보하지 않고서 부실 심의와 그 이상의 위헌성 심의(검열)에 나설까 심히 우려된다.

우리 법률은 유신시대의 국가모독죄나 국가원수모독죄가 없고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도 친고죄에 해당한다. 대통령 등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 혹은 정부가 직접 소(訴) 제기나 피해구제 신청을 하지 않는 한, 대통령과 정부 비난 게시물·댓글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수만~수십만 건의 과잉 삭제요청과 포털 업체들의 '자발적' 임시조치는 우리가 통상 표현의 자유라고 칭하는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제21조 언론·출판의 자유와 그 허가나 검열의 금지).

다만 여과 없는 욕설과 허위사실 날조 등에 의한 지나친 인격권 침해의 표현은 공익성 여부와 큰 상관없이 현행 법규와 헌법에 의거, 삭제·접근차단 등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민을 섬긴다는 것은 지적 우월주의와 엘리트주의 그리고 독선의 거절과 상통한다. 특히 인터넷 초강국의 위정자와 언론은 국민의 정보력과 판단력을 크게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소년들의 그것이 다소 미약하긴 하나 뛰어난 감수성과 솔직성 그리고 때때로 빛나는 성찰과 예지는, 우리 국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식인인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할 때가 많다. 그들의 주장대로 “우리는 바보가 아니예요!”라는 ‘사실’을 위정자와 조·중·동은 빨리 인정하는 게 좋다. 인터넷 시대, 논술 세대의 영향이나 업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국민이 크게 화난 지금 상황에서, 강제적 집회해산과 부당한 댓글삭제는 큰 저항과 화를 불러올 것이다.

곽영진  dkdds@d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