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네온빛의 매트한 입술, 서툴게 화장한 듯한 걸리시 테크닉, 신선한 표정이 더해진 누드 메이크업. 이는 올 봄, 여러분 혹은 여러분의 여자친구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물들인 베스트 메이크업 룩이다. 아는가. 이런 사랑스러운 메이크업 룩을 완성하기 위해서 여자들은 오늘도 잡지책을 뒤져가며 트랜드를 체크하고, 종류도 가격도 가지각색인 화장품과 화장품도구들을 구입하기 위해 통장과 씨름하며 생산해낸 작품이란 것을. 매정하리만큼 쉽사리 변하는 메이크업 룩에 눈을 흘기면서도 손에 쥔 화장퍼프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심리학적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으리라.

‘역시 여자들은 피곤해’라며 살며시 미소짓고 있는 남성분들. 남성용 비비크림, 마스카라는 아시는지. 이것들이 바로 없어서 못판다는 남성용 메이크업 제품이다. 남자도 화장하는 시대다. 아직도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있는 남성분들 위해 좋은 곳을 소개한다. 코리아나 화장품의 창업자인 송파 유상옥 박사가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의 화장과 여성 관련 민속품 5000여 점의 유물을 바탕으로 2003년 11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Space*c에 개관한 그곳. 화장박물관이다. 화장을 단순한 겉치레라고 생각하는가. 가장 먼저 화장박물관에 가면 화장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바뀌게 될것이다. 여기에 전시되어 있는 5000여 점의 유물들이 화장이 단순한 겉치레가 아닌 몸 전체를 아름답게 꾸미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각자 하나 둘 자신의 얽힌 사연들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보자. 화장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목적이나 기법은 사회상을 반영해 시대마다 달랐다. 5대 판소리 중 하나인 ‘춘향전’에는 놀랍게도 조선시대 남자들의 화장법이 나와있다. 글공부하다 따분해진 이몽룡이 분세수를 하고 놀러 간다는 내용. 분세수란 남자들의 화장법이다. 조선시대 남자들이 분세수를 하면서까지 하얀 피부를 원했던 이유는 검고 거친 서민과 달리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는 양반을 나타내는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분세수 방법은 이러하다. 1.물에 담긴 세숫대야에 흰 쌀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 2.피부 구석구석 쌀가루물로 꼼꼼히 적셔준다. 3.쌀가루의 미백성분이 피부에 잘 스며 들도록 자연광에 말린 후 한번 더 씻어낸다. 어떤가.

피부를 하얗게 만들어준다는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있는 미백기능성의 화이트닝제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더불어 박물관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이연로의 ‘일찍 일어나 머리를 빗으면서 동파를 본받아’를 읊조려본다면 남성과 화장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고려 중기 한국한시론의 기틀을 마련한 이인로의 한시작품 한문원문에는 옛 남성들의 전용 공간인 사랑방에 여성 화장구로 인식되는 경대와 빗접이 놓여있었으며, 그 당시 다양한 종류의 남성 장신구들이 존재했었음을 알려준다. 유교를 사회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자신을 단장하여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기품을 유지하여 내면과 외면의 미를 함께 중시하였다. 의관을 정제하는 것과 같이 화장을 통해 나태해지기 쉬운 자신을 추스린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화장박물관에는 ‘살파먹는 가루’로 소문이 나면서 여성들이 거세게 반발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는 박가분을 만날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5층에는 화장구, 장신구, 규중칠우 및 남녀 의복 200여 점이 전시되어있으며, 6층에는 전통화장재료를 제조도구와 함께 재현하고 각 시대별 화장문화에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새롭게 마련된 특별 전시실은 1년에 두 차례 소장품전을 개최한다고 한다. 미리 사전조사를 하고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관람시간：10:00-19:00(하절기 4월-10월) 10:00-18:00(동절기 11월-3월) ·교통편：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3번 출구로 나와 씨네플러스 극장 뒤편 세광길 도보 5분거리

차윤단 기자  youndani@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