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다양한 가치가 병존하는 시대이다. 서로 다른 가치들이 ‘충돌’하고 ‘공존’하며 또한 새로운’제3의 구도’를 찾아가려는 노력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가치의 다원주의’가 보편화되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패션문화 또한 특정한 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혼합된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바로, 스타일의 ‘supermarket화’ 현상이 그것이다. 현대 패션문화에 나타난 이런 혼잡한 양상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외양만을 놓고 판단하기에 그 속의 의미가 매우 다중적이다. 오늘날의 여러 가지 패션 현상을 복장에 표현되는 대표적 문화적 개념인 성(sex), 연령, 사회, 계층 , 민족성 등의 기준을 놓고 살펴볼 때 우리는 겉모습에는 드러나지 않는 현대 패션문화의 다중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 패션에서 성(sex)의 개념은 과거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여성이 남성 양복의 비즈니스 수트(Business Suit) 차림을 빌어 남성적인 멋을 내고, 남성이 화장이나 귀걸이 장식 등 유연해진 ‘꽃미남’ 모습으로 여성화되는 혼성모방, 또는 양성화의 현상은 심지어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몸의 성까지도 의학기술에 의해 전도시킬 수 있는 오늘날에는 그리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곧, 전통적인 남성상/전통적인 여성상으로 양분된 성과 복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점차로 이분법적이 아닌 혼합적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성의 바지 수트, 여성의 치마정장처럼 관례적으로 성을 구분하는 복식은 공적인 의복이 되어가고 간편한 비 형식적인 캐주얼(casual) 스타일이 현대의 대중생활을 영위하는데 적합한 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딱딱한 형식보다는 생활의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현대인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성과 여성의 성별 구분보다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함께 가진 하나의 개체로서의 인간자체를 중시하려는 인류의 진화된 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다. 현대패션에서의 ‘연령’ 개념의 혼재 현상은 miss같은 아줌마 패션, 즉 missy스타일을 낳거나 청바지의 전 연령 착용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것은 달력으로 계산되는 생물학적 연령(biological age)보다 자기 자신이 심정적으로 자각하는 자각연령(self-awaring age)이 중요시되면서 외형적 ‘나이’보다는 내면적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또한 , 젊음과 외모가 부각됨과 동시에 나이를 인정하면서도 자연적인 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공존하면서 미시족, 실버세대와 같은 다양한 연령대에 따른 다양한 패션의식이 증대하고 있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또한 오늘날에는 사회의 여러 계층에서 서로 다른 대조적 스타일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적인 부의 정도에 따라 명품패션을 통한 ‘과시적 소비’ 현상과 찢어진 청바지·구제품 패션 등을 통한 ‘과시적 빈곤’현상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반항적인 젊은 청소년 하위문화에서 나타나는 거리패션(street fashion)과 상류계급 문화에서 나타나는 명품패션 또는 과도하게 장식적인 럭셔리 룩(luxury look)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반 주류적인 그들만의 패션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도발적으로 드러내고 싶어하고, 지위가 높은 계층은 고가품의 패션을 통해 그들의 부와 특권을 묵시적으로 과시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현대 패션계에서는 세계화 추세에 힘입어 여러 가지 민속풍과 절충·융합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문화 권력의 주체가 되어왔던 서양문명권에서 동방문명권의 미적 가치와 매력을 인정, 수용하려는 시도에서, 또는 자국의 민족적 정체성을 세계패션에 드러내려는 동양권 국가들의 자존적 노력에 의해서 다양한 민속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패션양식에 혼합되고 있는 결과이다. 여전히 패션에서의 민족성 융합의 문제는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 가장 민족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스타일을 창조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와 같이 21세기 패션은 하나로만 대표되는 흐름이 사라지고 있으며 있는 혼란이 아닌 패션의 긍정적인 공존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변화된 패션 현상을 간파하기 위해서 인간환경의 변화와 다중적 문화의 흐름을 읽어 낼수 있는 혜안이 보다 필요한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김현숙 초빙교수
<예술조형대학·산업디자인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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