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젊은이들이 세상을 갈아엎으려 하는 것이라면....

청소년이 무장하여 기성세대와 ‘전쟁’을 벌이는, 말콤 맥도웰 주연의 <If....>라는 영화가 있다. <If....>(1968)는 영국 68세대의 매우 불온한 작품으로서 69년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국의 ‘앵그리 영멘’ 세대를 대변하며 50년대 후반 새 영화운동 ‘프리 시네마’의 기수로 나선 젊은 감독 린제이 앤더슨. 그가 60년대 영국 뉴웨이브 영화를 이끌다 방점을 찍은, 상징성이 강한 걸작이다.

영화는 영국의 한 명문사립학교와 그 기숙사를 배경으로 한다. 상류층 자제를 대상으로 명문대 진학과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곳. 계급사회의 총화를 보여주는 듯 학교 공간은 획일화, 기계화되어 있으며 현실과 환상, 삶과 우화가 교차한다. 선생들은 반반하게 생긴 학생에게 시중드는 일을 시키고 정당한 사유 없이 학생들을 구타하며 부조리한 짓들을 일삼는다.

번번이 무시되고 굴종만이 강요되는 학교생활에 불만이 쌓여가는 가운데, 불온한 ‘탈주’와 ‘배신’을 꿈꾸던 세 명의 학생들은 학교와 교사, 동문들에 맞서 싸울 방법을 모의하게 된다. 시민혁명을 찬양하고 투쟁을 지지하는 ‘성난 젊은이들’은 전통과 보수, 복종을 강요하는 지배계급에 대해 마침내 분노를 폭발시키며 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국가적 영웅이자 학교 동문인 덴슨 장군은 학생들에게 일장훈시를 한다. 그가 엘리트의 특권과 의무, 지배와 전통의 중시를 강조하며 “지난 50년간 세계는 크게 변했지만 영국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런 기성세대들을 향해 ‘성난 젊은이들’이 마구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날린다.

깐느는 이 격렬한 ‘테러리즘’을 당대의 정당한 사회적, 예술적 분노의 표출이라 보았다. 당시 뉴 브리티쉬 시네마들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나아가 사회체제에 대한 영국 젊은이들의 저항이 표출된다. 그것은 나의 총알 한발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부정한 현실에 대해 행하는 저들 영화의 몸부림이었다.

만약에 소녀들이 시민적 주체로 나섰다면....

만약에 소녀들이 우리사회의 시민적 주체로 나섰고, 나아가 시민운동 주체의 일부로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라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필자는 지난 14일(수), 17일(토) 본지칼럼 집필을 위해 청계광장의 촛불문화제, 특히 중고생 동향을 취재했다. 2만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여고생 및 일부 여중생이 도합 70%정도를 점했다는 5월 3일(토)의 제2일째 집회 때와 달리, 참여 계층이 훨씬 다양화된 14일과 17일엔 일반시민의 비중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무려 6만여명이 운집한 17일 전체 남녀 중고생의 비중은 평일과 다른, 대체로 학원수업이 없는 토요일이기에 30% 정도로 늘었다.

필자의 취재·인터뷰에 의하면 여고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이 잘못한 것 때문에 왜 저희 청소년들이 덤터기를 써야 되죠?”, “지금 나설만해요. 몇 년 후면 우리들이 이 사회를 이끌 테니까”, “친구들이 조·중·동은 찌라시, 네이버는 개이버라고 욕해요. 다음도 비난하기 시작했어요, 조작한다고요.” 어떤 여중 2학년생은 “한번 가보고는 싶지만 학원 때문에 바쁘고 좀 귀찮기도 해서 아직 못 가봤어요. 우리 학교는 선생님들이 얘기를 잘 안 해 줘요”라고 말했다.

집회 자유발언대와 국회 민원기록에 오른 그네들의 주장들은 이렇다.
“미국소가 안전하다고? 우리가 바봅니까? 경제 살리기 전에 우리 목숨부터 살리세요.” “이랬다, 저랬다 교육정책. 또, 어른들이 잘못해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었는데 우리가 투표권이 없다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합니까?” “건강보험 민영화할 거라고 하는데, 그럼 가난한 우리 식구들은 병나면 어떡합니까?”
“제발 이명박 대통령 좀 탄핵시켜 주세요. 얼마나 이 나라가 혼란스럽게 돌아가면 고작 중학교 2학년생인 제가 국회까지 와서 이러겠습니까.”

보수의 독점시대가 점쳐지고 대학생들의 보수화가 진행되던 판에, 무엇이 우리 사회의 가장 여린 집단을 가장 강한 권력자에게 정면도전하도록 만들었을까? 광우병 파동과 관련하여 박근혜 전 대표도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하고 이회창 총재도 보수층이 나서 정부 잘못을 공격해야 한다고 했듯이, 학생들의 ‘배후’는 이대통령과 정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오죽하면, 협상 타결 직후부터 정부를 감싸며 ‘방송탓’ ‘괴담탓’ ‘배후론’을 펼쳤던 조·중·동마저도 정부 협상을 “총체적 부실”, “졸속 협상” 등으로 비판하고 나섰겠는가. (󰡔조선일보󰡕 13일 1면, 19일 3면 등. 하지만 이들 매체의 뒤늦은 순식간의 변신은 자기반성 없이 정부 탓만 하는 것이라는 역비판이 따랐다.)

만약 광우병에 걸려 의료보험 안돼 죽으면....

영화 속 장군의 말처럼 "탈주자는 비겁하다. 가장 용서받지 못할 일은 동료에 대한 배신이다…"라는 식으로, 만약에 한국의 주류사회가 “미국을 화나게 하거나 한미동맹에 역행하면 빨갱이다”라는 화법을 쓰며 국민들을 너무 한곳으로 몰아가려 하다가는 큰 화를 초래할 것이다. ‘광우병에 걸려 의료보험 안돼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 달라’는 말이 도는 상황이다.

이미 최악의 지지율에다 ‘민란’ 수준의 사단이 났지만,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한나라당에게 아직 맹성과 섬김의 기회는 남아있다. 만약 누구라도 자유민주주의 내지 일반적·공화적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절단내려 한다면, 어느 네티즌(관객)의 비유처럼 “모든 이들을 ‘때려잡다’가는 그야말로 영화에서처럼 ‘총부림’ 나는 거” 아닐까? 만약에 말이다.

의료보험 민영화에 대해서 한 마디. 이 문제의 심각성과 참담함에 대해 알려거든 마이클 무어 감독의 걸작 다큐멘터리 <식코>를 보라. 냉정하고 거만한 평론가들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 걸작이다.

 

곽영진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