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강남역 서점에 들려 책을 둘러보고 있었다. 항상 읽는 하얀 페이지에 꽉 찬 검은 글씨들이 그날따라 내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는지 내 발걸음은 비소설 코너로 옮겨지고 있었다. 순간 『The Blue Day Book』(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라는 책 제목과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턱을 괴고 있는 원숭이 표지 사진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책을 편 순간, 너무나 인간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동물 사진과 짤막한 문장들이 피로한 나의 심신을 미소와 맞바꾸어 주었다. 페이지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갖가지 표정의 동물 사진은 나의 웃음을 자아내었고, 한입에 넣을 수 있는 초콜렛같이 짤막한 문장들은 나의 구미를 자극했다. 각 페이지 마다 텍스트의 4/5를 채우는 동물 사진 한 장과 그에 따라오는 짤막하지만 전달력 있는 문장들이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Bradley Trevor Greive)는 『The Blue Day Book』이라는 책을 출간하기 위해 스물아홉 살이 되기까지 8년 동안 무려 90번의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책’이란 틀을 완전히 벗어난 ‘책’ 이었기에 출판사들로부터 외면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나의 쓸데없는 물음에 답이 되는 내용이었다. 사진과 짤막한 글귀를 보면서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을 옮긴 신현림 시인의 맛깔 나는 시적 번역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원문과 번역이 사진 아래에 같이 표기 되어있어, 원작의 느낌과 우리나라 정서의 맞는 느낌도 함께 누릴 수 있는 책이다. 2000년에 첫 출간되어 그 해 최고의 베스트 셀러가 된 책, 『The Blue Day Book』은 독자에게 강력한 주장이나 어떤 숨은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물들을 절묘한 타이밍에 찍은 사진과 짤막한 글귀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한편의 감명 깊은 시처럼 독자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동감을 주고 있다.

우울한 표정을 한 북극곰의 사진과 함께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있지요. ‘Everybody has blue days’ 로 이 책은 시작된다. 이 첫 문장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게 이 문장은 우리에게 현재 우리의 삶이 기쁜 날도 있지만 우울한 날도 있다는 것을 다시 제차 깨닫게 하고, 강한 동감을 주었다. 현재 우리 시대의 삶은 너무나도 바쁘고, 뒤 돌아 볼 여유도 있지 않다.

사회는 발달해 갈수록 인간의 자잘한 감정에 신경 쓸 여유를 주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있어 자신만의 감정에 빠져있는 것이 시간 낭비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우리 삶에 쉼표가 필요 하듯이 이 책은 우울한 날 독자를 위로하며 쉼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다. 마지막 장에 훈훈한 웃음을 짓고 있는 개구리 사진에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I think so too’라는 문장은 지금까지 작가가 독자에게 해왔던 말들을 꼭 개구리가 공감하여 말한 것 같은 효과를 준다.

개구리의 훈훈한 미소와 함께 강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 마지막 장이 우울한 독자의 마음을 한 번 더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울적한 기분이 드는 날에, 이 책이 들려주는 따뜻한 대화에 귀 기울인다면 우울한 마음에 위로가 될 것이다. 『The Blue Day Book』의 동물들이 진지하면서도 재치 있게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우울하지만 힘을 내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라고 말하고 있다. 삶의 쉼표를 제공하는 이 책은 우울한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상대현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