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문의 위기’가 위기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동국대는 매년 졸업생의 취업률 등을 통해 학과를 평가 한 뒤 그 결과에 따라 하위 학과의 정원을 줄여나가고 5년간 계속해서 하위 1∼8위에 들거나 누적 평가점수가 일정 수준 이하면 학과 자체를 없애거나 학생들이 선호하는 다른 학과와 통폐합하기로 했다. 비단 동국대 뿐만이 아니다.

 우리대학 죽전캠퍼스의 독어독문 학과도 2년 후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국립대인 서울대에서는 국사·서양사·동양사학과의 통합을 검토 중에 있으며 순천대는 화학·물리 등 기초과학 학과를 폐과 시키고 바이오분야를 강화시킨다고 한다. 한양대에서도 지난 해 2학기 서울과 안산캠퍼스의 독문학과를 통폐합 시켰다.

대학들의 이런 움직임은 정부가 대학 재정지원 방식의 변화를 줬기 때문이다. 현재는 대학 측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정부가 평가하고 현장 실사나 인터뷰 등을 통해 재정지원을 결정하는 선정평가위주로 돼있다. 하지만 앞으로 객관적, 정량적 성과지표를 통한 방식으로 전환해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2일 ‘우수인력양성 사업’에 대해 대학 성과와 여건 지표 총점 순에 비례해 총액한도 500억원 내에서 차등 배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교육부가 말하는 성과 지표는 취업률, 장학금 지급률, 학생 충원률, 전임교원 확보율, 학생 1인당 교육비 등 5개 항목으로 구성돼있다. 때문에 취업률과 장학금 지급률이 높을 수록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게 된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 정책에 따라 대학은 학과별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고 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기초학문 학과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초학문 위기는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바로 ‘학부제’이다. 99년에 전면도입된 학부제는 인기전공이나 취업이 잘되는 전공으로의 학생쏠림을 심화시켰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인기에 취업률이 낮은 기초학문 전공은 학생들이 도외시 하게 됐고, 학생이 찾지 않으면서 인기학과에 비해 경쟁력이 낮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때문에 기초학문의 위기가 도래됐는데 정부는 오히려 대학을 압박하며 기초학문을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은 학문탐구라는 본연의 기능도 중요시 해야 되지만 취업률이 대학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고 대학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정부의 재정지원에서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재정지원을 더 받기 위해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과에 대해서는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은 대학대로 대학의 본래 기능과 정부정책, 취업사이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는 셈이다.

취업이 강조되다 보니 대학의 정책이 ‘취업’에 초점이 맞춰지고 결국 대학의 다른 기능들은 존립 근거를 잃어가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인기학과만 살아남고 기초학문은 아예 사라지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학문을 탐구하고 전문인을 육성하기 위한 대학이 취업하나만을 위한 일종의 ‘직업훈련원’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쳐 낼 수가 없다.

날로 취업이 어려워 지고 있는 사회에서 대학이 학생들의 취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들의 취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 꼭 기초학문학과의 통폐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은 필요하지만 인기학과는 살리고 비인기 학과인 기초학문은 죽이는 식의 이분법적 태도는 결코 옳다고 할 수 없다. 응용은 기초의 토대위에서 이루어 진다. 기초학문 학과의 통폐합은 오히려 대학의 위기를 스스로 자초할 수 있다. 자고로 기초가 튼튼해야 무엇이든지 잘 해낼 수 있는 법이다. 때문에 기초학문의 위기가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민경 기자  passion529@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