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멜로드라마틱한 소설을 좋아한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소설이 있습니다. ‘핑거스미스’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배경이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이고, 여러 곳에서 19세기 소설의 소재와 풍속을 빌리고 있습니다. 특히 디킨즈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빌려온 부분이 눈에 띄는군요. 런던의 뒷골목 소매치기들의 세계와 출생의 비밀, 재산을 둘러싼 음모, 이런 것들을 빌려와서 그 시대의 방식과 말투로 소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핑거스미스는 낡은 느낌이 아니라 현대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건 19세기 소설에선 다루지 않았을 동성애란 소재와 중간 중간 느껴지는 현대적인 감성 덕이기도 하고, 작가가 이 소재들을 매우 능숙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동성애란 소재 때문에 겁먹은 분들도 있을 것 같군요. 겁먹지 마세요. 그런 걸로 겁먹고 놓치기엔 정말로 아까운 소설입니다. 이야기는 수잔(수)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배경은 아이를 맡아 기르고, 그 아이를 소매치기나 도둑(핑거스미스는 도둑이라는 뜻의 빅토리아 시대 은어입니다.)으로 내보내거나 어린 아이를 일에 빌려주는 것으로 돈을 버는 석스비 부인의 아지트입니다.

수는 석스비 부인의 아이들 중 하나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맡아서 다정히 길러주는 석스비 부인을 수는 어머니 같이 여깁니다. 어느 날 상류사회 출신의 사기꾼인 ‘젠틀맨’(별명)이란 사람이 찾아와 상속할 돈이 어마어마한 모드 릴리라는 아가씨의 이야기를 합니다. 수가 모드의 하녀로 들어가 모드와 젠틀맨이 이어지는 것을 도와주고, 결혼 후엔 모드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리고 도와준 대가로 돈을 나누어 준다는 계획을 내놓습니다. 수는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모드의 하녀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모드의 하녀로 취직한 수는 순수해 보이는 모드에게 차츰 동정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 감정이 점점 자라서 수와 모드 사이의 관계는 점점 친밀해지지요.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감탄했던 것은 소설의 구성방식입니다. 1장은 수의 시점에서, 2장은 모드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1장에서 우리는 수가 알고 있는 정보밖에 접할 수 없고 따라서 수의 시선을 따라 모드에게 동정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2장에서 수가 모르는 모드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까지 독자가 모드에게 갖고 있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뒤집어집니다. 그런 생각을 했으면서 어쩜 그렇게 겉으론 천사같이 굴 수 있는지! 사기를 쳐야할 대상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수가 얻게 될 돈과 모드사이에서 갈등하는 1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도 훌륭하고요. 그리고 3장에 가서 모든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지고 사건이 해결되는 부분에선 추리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재미도 느껴지네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완벽한 선인들이 아닙니다.

수는 모드에게 사기를 칠 생각으로 들어왔고, 1장에선 마냥 순수하고 아기 같아서 돌봐 줘야 할 것 같은 모드도 속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래도 마지막엔 두 주인공 다 조금씩 성장하고, 서로 환상에 투영해서 본 상대방이 아니라 현실의 상대방을 마주 봅니다. 읽으며 즐거웠던 소설이었습니다.

단대신문 편집부  dkdds@d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