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아고라 토론마당이 얼마 전 ‘이기적인 대학생’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어제 6월1일은 ‘이기적인 영화인’ 관련 게시물이 서너 건 속출했습니다.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붙여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영화평론하는 곽영진이란 사람인데요. 매스미디어 비평을 비롯한 대중문화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어, 네티즌들의 여론 ‘청취’를 위해 아고라에 자주 들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일부 아고리언들이 안성기·최민식씨 등 스타들의 ‘침묵’과 과거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운동을 비난하는 게시물, 댓글들을 올리더군요. 또, 이에 대해 어느 영화인이 자제를 호소하는 것을 보고 한 말씀 올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 정부에서 2005년말 스크린쿼터 전격 50% 축소결정을 내리기까지, 범영화인 기구인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에서 공동정책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스크린쿼터는 1차적으로 할리우드의 세계영화시장 지배(독점)에 대응하여 자국의 영화 산업과 문화를 쿼터(할당제)로 지켜내려는 민족문제이기도 하지만 축소 시 저예산의 작은영화·예술영화부터 직격탄을 맞게 되는, 어찌 보면 계층(급)성을 띤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자는 전체 영화자본 및 스타들의 이익과 함께 가난한 연기자·스탭들의 일자리까지 보호하는 포괄적 측면이 작동하지요. 후자는 영세한 영화자본이나 제작자를 보호하는 것과 함께 전체 영화문화의 품질과 다양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강조되고요.

스크린쿼터는 이렇게, 일차적으로는 민족적인 국가간 문제이고 부차적으로는 민족내부적인 문제입니다. 무역·산업 및 민족·계급의 문제이고 또 이 양자와 어느 정도는 무관한 예술·미학의 문제로서, 다소 복잡한 3중적인 모순과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한미FTA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쇠고기·스크린쿼터 등 핵심 국익을 무상으로 내주어 치명적 외교실책을 자초한 것이 돼버린 오늘, 미국이 내부 사정으로 FTA를 거부할 판이어서 꼴은 더욱 우습게 돼버렸습니다. 협상의 원칙을 포기하고 주무기를 미리 헌납하는 식인데, 혹자는 이런 걸 ‘등신외교’라 하더군요.

안성기, 최민식 그리고 장동건, 이준기 같은 스타들은 사실 스크린쿼터가 크게 축소돼도 그들 주연 영화에 투자가 이어질 것이고 CF와 방송드라마 시장에서 계속 환영받을 것이기 때문에, 쿼터 문제와 그들의 이익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스크린쿼터 지키기 투쟁에 앞장선 것은, 나름의 의식(개념)이 작동하기도 하였겠지만,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인기와 부 따위로 인해 동료·선후배 영화인들에게 지게 된 마음의 빚이 큰 이유였습니다. 할리우드의 집요한 공세와 정부의 저자세에 대한 저항감, 민족적 자부심의 상처 같은 것도 작용하구요.

한국영화는 한 해 개봉편수가 108편이던 것이 올해 50편으로 급감할 전망이고 작년 업계의 평균수익률은 -42%랍니다. 지금 굉장히 많은 스탭과 연기자들이 일이 없어 놀고 있고요. 한국영화는 많은 부분 박살(?)이 났습니다. 위기를 넘어 자칫 죽을 지경에 처한 것이지요. 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스크린쿼터 축소 탓만은 아닙니다. 영화인들, 특히 투자와 작품을 잘못 집행한 제작·투자자들과 과다한 개런티를 요구하는 스타·소속사들의 과오가 컸다는 거 잘 압니다. 물론 지난 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 사람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지요. 안성기, 최민식, 박중훈, 장동건 그리고 스타감독 이준익, 박찬욱, 봉준호 등. 그들이라고 해서 요즘 사태에 왜 근심걱정이 크지 않으며 할말이 없겠습니까. 기자회견을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블로그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글을 올린 걸 가지고 ‘연예인들이 어린 학생들을 선동한다’, 특히 김민선에 대해 ‘미친 소리’ 운운하며 공격을 해대는 판입니다. 나잇살 먹은 사람으로서 더욱 조심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안성기 씨 등이 문화예술계의, 혹은 우리사회의 일류이고 고소득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 부유층·특권층과 달리) 바탕이 선하고 꽤 진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별개이지만요. 민선이, 매우 착하고 진지하며 바탕이 여리지만 용기도 있습니다. 이준기? 원래 할 말은 하는 편입니다. 청화대가, 이에 앞서 조선일보가 분석했듯이 지금의 집회와 시위의 동력은 시민들 및 네티즌, 특히 소외계층(“反세계화 불만세력”)과 젊은이들에게서 나오고 있습니다. 통일된 지휘부가 없습니다. 18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 (이하, 비유법이니 용서하십시오.) 아니 할 말로, 그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위대중들은 이리갔다 저리갔다, 군사학적으로 말하면 자칫 ‘오합지졸’이 될 판입니다.

다른 문제이지만, 영화계는 분열돼 있고 무슨 동력이 거의 안 나오고 있습니다. 안성기 씨 등이 ‘영웅적으로’ 나설 조건과 상황이 좀 아니지요. 영화계가 좀 이기적인 거 아니냐. 그런 거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성해야겠지요. 하지만 편가르기나 매도의 대상이 되어서는, 우리 모두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봅니다. 먹거리와 건강권의 문제를 이념, 그것도 좌·우와 배후선동의 문제로 규정한 거. 얼마나 무식하고 유치합니까. 요즘 좌파나 ‘좌빨’이 어딨습니까. 지금 한국사회에 사회주의 변혁이 필요하고 가능하며 사회주의 프로그램을 돌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1%라도 됩니까.

지금 이 정권과 보수언론은 그걸 잘 알면서도, ‘담론 투쟁’을 선도하고 제반 자리와 기회 그리고 공공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매일매일 ‘쇼’를 하고 싹쓸이를 하려는 거지요. 지금 좀 보수적이고 살기 넉넉한 사람들 가운데 오만과 독선을 싫어하는 많은 이들은 현 정국과 정부에 화가 나 있습니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요. 우리 모두 과도한 편가르기나 매도보다 기다림과 격려, 비판과 촉구가 좋은 태도요 방법 아닐까요. 동영상에서 보았는데, 진중권 교수가 호소하듯 견해가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 합니다.

곽영진  dkdds@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