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만물의 영장인 점은 역사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역사감각의 근저에는 ‘모든 것은 변화를 거듭한다.’는 인식이 있다. 이렇게 볼 때 모든 것에는 ‘시작’ 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언제 시작된 것일까?’ 하는 물음에 수많은 기록과 답변이 남아있다. 17세기 중반의 아일랜드 성직자 제임스 어셔 대주교는 지구의 창조가 기원전 4004년 10월 22일 오후 8시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족장들의 나이와 긴 족보, 그리고 성서의 다른 구체적 사실들을 연구하여 이같은 계산 결과를 제시했던 것이다.

유태인들은 ‘기원전 3761년 10월 6일 상오 11시 11분 20초’를 기원원년으로 보고 있다. 같은 그리스도교에서도 포르투갈령 앙고라에 처음 발을 내딛었던 데이오그칸은 그 곳에 ‘세계창조 1681년, 그리스도 탄생 1482년’이라는 비를 세웠다. 그러나 계산근거는 밝히지 않고 있다.
지구의 정확한 나이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1986년 프랑스 물리학자 앙투완 앙리 베케렐이 방사성이론을 발견한 후였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지각이 대략 47억년전에 굳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계산은 방사능을 가진 각종 광물의 붕괴 즉 반감기를 연구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지구(地球)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둥근 땅’이다. 둥근 땅은 반지름 6378 Km, 둘레 4만 74 Km, 겉넓이 5억 1010만 934 Km2로 되어 있으며 그 중 70%가 물이다.
따라서 이 중 우리가 땅이라고 할 수 있는 면적은 108조평인데 여기에도 얼음과 호수, 산악과 사막, 초원 등이 대부분이어서 실제로 재산 가치가 있는 땅은 세계인구 1인당 200평, 6인가족을 예로 든다면 1200평 정도에 불과하다. 역사상 땅을 가장 많이 소유한 집안은 아르헨티나의 안코레나 가문이었다. 1856년 당시 이 가문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유한 농지는 75억 681만평이었다. 우리나라 국토가 300억평이고 이 중 농지가 66억평임을 감안한다면 안코레나 가문이 보유했던 땅은 우리나라 전체 농경지 보다 넓었던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땅에 대한 애착만은 공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처럼 땅은 부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사람이 죽어 묻힐 땅은 단 세 평이면 족하다.그 안에는 신분을 나타내는 코드가 포함되어 있다. 원래 부동산이라는 용어가 프랑스의 Real estate를 번역한 말인데 Real은 ‘진정한’ 이라는 뜻이고 estate는 ‘신분’이란 의미의 라틴어 status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동산 즉 땅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움직이지 않는(不動) ‘진정한 신분’ 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격동기마다 땅의 지배자는 바뀌었다. 그리고 땅을 지배하는 법도도 바뀌었다. 역사는 땅이 가장 합리적으로 배분되었을 때, 시절의 평탄함과 왕조의 번성함을 가르친다. 전시과(田柴科) 체계를 정립한 고려 성종 때는 태평세월을 노래했으며, 이조의 개국공신들은 관리들에게 나누어주는 땅을 경기일원에 국한시킴으로써 조선의 기틀을 다졌다. 이 땅의 논과 들이 외세에 강점 당하기 전까지 한반도 토지제도의 뼈대는 국유제였다.
단군 조선 왕조 이래 땅은 나라의 땅이었고, 왕의 땅이었다. 물론 어느 왕조든지 국유제는 명목 뿐이었고 사실상 권문세가나 토호가 땅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왕의 땅』이라는 원칙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왕의 땅』이라는 원칙이 망각될 때 평화는 깨졌다. 백성들은 굶주렸고, 흉년이 들었으며, 민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결국은 지방토호들이 득세하여 왕을 권좌에서 밀어냈다.
이처럼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부와 신분을 동시에 획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 땅에 매달리는 세태에 두려움마져 느낀다. 그러나 만경(萬頃)의 땅을 가진 지주도 죽어서 묻힐 땅은 세 평이면 족하고 만석(萬石)꾼의 식탁도 하루 세 홉이면 족하다는 옛말이 무색한 요즘이다.
<경상대학·경상학부·경제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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