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이끌었던 신경제의 거품이 완전히 솟아오르기도 전에 향후 미국의 주식시장을 예측했던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펜실바니아 와튼 경영대학원의 제레미 시걸교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예일대학의 로버트 쉴러교수이다. 두 사람은 나이도 동갑이고, MIT대학원에 들어갈 때 나란히 엑스레이 검사를 받은 이후 친구가 되었다. 해 마다 가족 동반여행을 같이 갈 정도로 가까운 친구이지만 주식시장을 보는 눈은 완전히 반대이다. 시걸교수가 쓴 책의 제목은 "장기주식투자(Stocks for the Long Run)"이고, 쉴러교수의 책의 제목은 "비이성적인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다.

책의 제목만 보아도 대강 누가 낙관론자이고, 누가 비관론자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낙관론자의 요지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 주식이 제일 괜찮은 투자 수단이라는 것이다. 반면 몇 년 뒤에 나온 비관론자의 논지는 인터넷 중심의 신경제로 야기된 거품이 붕괴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신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비관론자인 쉴러교수가 좀 더 주목을 받게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주식 등 금융자산에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쉴러교수는 올해 새로 출판한 책인 "신금융질서(New Financial Order)"를 통해서 분산투자와 파생상품을 이용한 금융기법의 중요성과 이를 통한 국가와 개인의 위험관리를 강조하고 있다. 결국 위험에 노출된 금융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선물과 옵션을 비롯한 파생상품은 그 방법을 제공한다.
금융시장에서 투자자가 선물과 옵션을 이용해서 헤지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주식과 선물ㆍ옵션만이 아닐 것이다. 정부와 주식회사가 발행한 다양한 종류의 채권, 상업어음, 여러 나라의 화폐, 양도성 예금증서, 최근 거래되기 시작한 상장지수펀드(ETF)와 주가지수연동증권(ELS) 등 그야말로 다양하다. 특히 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 등 금융거래를 주된 업으로 삼는 회사들에게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관리하는 일은 생명을 관리하는 것과도 같다. 최근 카드회사들이 겪는 어려움도 느슨한 위험관리로부터 야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위험관리에 실패한 결과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위험한 상황까지 도래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금융거래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위험 중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가격변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험이다. 개별 자산의 가격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은 헤지를 통하여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자산 전체의 위험은 어떻게 줄일 것인가? 우선 자산 전체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개별 금융자산의 위험의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험에 노출된 금융자산을 하나의 숫자로 표현하는 방법이 미국의 투자은행인 JP모건에 의해서 개발되었다. 회사의 전체 자산이 어느 정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 수치를 VaR(Value at Risk)라고 한다. 예를 들면, VaR가 10일간 99% 신뢰구간에서 10억원이라고 표현한다. 향후 10일간 금융자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이 10억원이상일 확률이 1% 정도라는 뜻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VaR를 관리함으로써 가격변동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위험에는 가격변동 위험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산 주식 또는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부도가 나는 경우를 가정하자. 그러면 주식이나 채권은 당연히 휴지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발생하는 위험을 신용위험이라고 한다. 가격변동 위험과 마찬가지로 신용위험도 파생상품을 이용하여 헤지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러한 파생상품을 신용파생상품이라고 한다 또 운영위험이라는 것도 있다. 주문실수나 착오로 발생하는 위험이다. 실제로 어느 회사가 옵션시장에서 주문 실수로 30초 동안 90억원의 손실을 본적이 있다. 그 회사의 연 순익이 100억원 정도이니 그 충격은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최근에는 모델위험이라는 것도 이야기되고 있다. 복잡한 파생상품의 가격계산 모형에서 발생하는 위험이다. 이렇게 금융거래에서의 위험은 다양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잘 관리하는 것이 금융기관의 생사를 가르는 일이 되고 있다.
<증권거래소 시장감시부 차장·
87 법학 졸> choica@k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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