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유토피아의 정치선전탑`
국립현대미술관(과천)의 중앙홀을 가득 메운 채 서 있는 이 작품에 대한 필자의 첫 번째 느낌은, 하필이면 왜 제목이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음)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우선 초한지에 나오는 이 유명한 이야기를 상기해 보자. 한(漢)의 고조 유방(劉邦)이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인 초왕(楚王) 한신(韓信)에게 물었다.
(사진: 백남준의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

"과인은 몇 만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장수감이라고 생각하는가?" "폐하께서는 한 10만쯤 거느릴 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예, 신(臣)은 `다다익선`입니다." 결국 한신은 (흔히 하는 말로) 토사구팽 당하지만, 그를 두고 용병의 천재라고 부르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의 지휘봉에 따라 수십만의 군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는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 사용된 모니터는 우리나라 개천절(10월 3일)을 의미하는 1003대이며, 필자가 기억하는 한, 이보다 많은 모니터가 동원된 비디오아트 작품은 없다. 백남준이 자신을 한신에 빗댄 것이라면 1003대의 모니터는 한신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사들인 셈이다.
7-80년대에 ‘비디오 아트’전시는 이른바 멀티비전의 시대였었다. 하나의 VTR에서 나오는 영상신호가 몇 대 혹은 몇 십대의 모니터에 동시에 공급되는 장치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작은 화면들이 모여서 큰 화면을 이루는, 좀더 고도의 기술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수십대의 모니터를 늘어놓는 방법은 특히 백남준이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기도 했고, 이때 몇 개의 영상소스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니터들은 마치 잘 훈련된 군대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또 늦은 여름밤에 고층 아파트의 수많은 창문들에 비추어지는 TV화면의 빛들이 (같은 채널을 보고 있는 탓에) 동시에 움직이는 광경도 이와 유사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1003대의 모니터에는 3개의 영상소스가 비추어지고 있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그의 대표작 <지구의 축>(1973) 혹은 1984/86/88년 동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계기로 실시되었던 일련의 ‘위성중계아트쇼’에서 사용되었던 이미지들을 ‘잘게 썰어서 버무려놓은 비빔밥’이라 할 만하다. 즉 이 작품은 지구상의 모든 문화와 역사는 전파매체를 통하여 하나의 장으로 연결되고, 합쳐지고, 상호반응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를테면 M. 맥루한이 말했던 ‘지구촌’의 개념을 입체적 혹은 시각적 버전으로 확대해 놓은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히 ‘미디어유토피아의 정치선전탑’이라 할 것이며, 이 점에서 또한 ‘사회주의 이념의 바벨탑’이라고 할 수 있는 V.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본 연재 12회 기사 참조)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호에 이어진다.
<예술대학·예술학부·서양화전공>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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