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부들의 행진에서 뛰쳐 나오라

지금 한국인 모두가 집단으로 앓고있는 병이 하나 있다. 1970년대에 이룩한 한강의 기적이라는 압축성장의 심각한 후유증이다. 영어로 Pseudo-affluence syndrome 정도로 불러도 되지 싶다. 선발국가들이 100년, 200년 걸려 성취한 공업화, 산업화를 한국은 박정희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20년도 채 안걸리는 짧은 기간에 해 냈다. 이른바 개발독재다. 그결과를 우리는 지금 병으로 앓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나는 70년대에 한국경제가 숨가쁘게 성장하고, 그래서 한국인들의 생활이 하루가 다르게 풍요로워지는 모습을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워싱턴에서 실감했다. 1970년부터 78년까지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는 동안 수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을 방문했다. 그들과 빈번하게 식사를 하고 술집에도 갔다.
미국의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술을 주문할 때 스카치면 스카치, 맥주면 맥주, 와인이면 와인을 한잔씩 주문한다. 그리고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마신다. 특파원들도 그랬고 한국서 온 방문객들도 그랬다. 그러다가 70년대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술 마시는 풍속도가 달라져 갔다. 한국에서 온 손님을 모시고 식당이나 술집에 가서 특파원이나 대사관 관리나 상사 (商社) 의 주재원이 그 이전 같이 스카치 온 더 락스 한잔, 또는 맥주 한병을 시키면 서울 손님은 펄쩍 뛰면서 웨이터에게 호기있게 말한다. “시바스 리걸 한병 가져와요!”.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은 졸부 (猝富)를 양산 (量産) 해 냈다. 한국인들은 경제성장의 속도 못지않은 빠른 속도로 스포일(Spoil)되어 갔다. 씀씀이가 헤퍼지고 안하무인이 되어갔다. 그리고 물질만능의 망망대해를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런 현상의 가장 심각한 결과가 한국인들의 사고 (思考) 페턴의 OX화다. 흑백논리다. 그것도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OX가 아니라 이익이 되느냐 안되냐의 OX다. 외국, 주로 미국의 이름께나 있다는 경영 전문가들이 줄줄이 한국에 초빙되어 지적 (知的) 인프라(Infrastructure)가 생략된 경영과 돈벌이의 How-to를 설교하기 시작했다. 회사 간부들은 그들의 설교를 성경말씀 같이 듣고 아래로 아래로 전파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개념적 사고의 능력을 잃고 도덕 불감증에 깊이 빠져들었다. OX와 How-to에 매달리다 보니 이른바 문사철(文史哲)은 완전히 찬밥신세가 됐다. 문사철과 결별하면 가치관의 기반이 무너진다. 나무를 보되 숲을 못 보고, 눈 앞의 현상은 알되 그 본질을 모른다. 60년대와 70년대에 구슬땀을 흘리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참여했다고 자부하는 50대와 6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자신이 이룬 풍요의 방석에 앉아 결심을 한다. “내 자식들에게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인생을 안락하게 살수있게 해 주자.”

결국 우리는 물질적 성공의 혹독한 댓가를 가치의 세계에서 치르게 됐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독서(공부라고 해도 좋다)는 세개의 층(Tiers)으로 구분할수가 있다. 1층이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다. 이것은 경영의 기본이요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이다. 2층이 지식을 위한 독서다. 대개 전문분야의 서적과 자료들이다. 3층이 가치관에 관한 독서다. 역사와 문학과 철학 서적들이다.
경제성장 자체를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1층과 2층의 독서로도 충분하다. 시간있으면 골프 쳐야하고 룸쌀롱 가야하고 동남아시아에 섹스와 골프 관광 가야한다. 그래서 극소수의 예외는 있지만 성장세대는 문사철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과 How-to의 요령을 물려줬다. 플라톤이나 마커스 오를레우스는 고사하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나 플루타크의 영웅전이나 사마천의 사기 (史記) 나 기본스의 로마제국의 흥망을 진지하게 읽는 대신 삼국지와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쓰)에서 싸움에서 이기는 요령과 사람 다루는 재주와 제왕학(帝王學)의 벼락공부를 자녀들에게 장려했다. 그렇게 해서 빌 게이츠가 되라고 독려한다.
빵만으로는 살수 없는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다. 이공계 우대도 좋다. 그러나 정부의 교육정책은 젊은이들에게 최소한의 가차관을 심어주는 비전있는 고육정책을 써야한다. 풍요로운 삶과 가치있는 삶은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풍요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독서의 2층에 해당되는 법률조문만 달달 외운 사람이 판검사가 되어 인간을 단죄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희극이요 비극(Tragi-commedy)다. 젊은이들이 정부의 교육정책 믿지말고 졸부들의 행진의 대열에서 뛰쳐 나오지 않으면 한국은 OECD의 ‘살찐 돼지우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약력
-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이란 호메이니 혁명, 전쟁후의 이라크 등 취재
- 아놀드 토인비, 시드니 셸든, 보 구엔 지압, 토니 블레어 등 인터뷰
-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 수석논설위원, 편집국장, 출판본부장 지내고 지금은 부사장급 국제문제 대기자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