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사회과학대학 사회과학부 행정학전공>교수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이라는 말처럼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지는 말은 드물다. 공무원이란 정치권력을 배경으로 하여 국민을 대신해서 공공정책을 만들고 이를 구체화하거나 집행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관료라고 하고 만인의 하인이라는 뜻에서 공복(公僕)이라고도 한다. 관료(官僚)란 감투를 쓴 사람이란 뜻이다. 다른 보통 국민보다는 다른 위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말로는 ‘나으리’라고도 하고 ‘영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의 공무원직급체계에 있어서도 5급이상부터 직급명칭에 사무관, 서기관이라하여 ‘관’이란 글자가 붙여 있고 사무관부터 ‘자리’ 즉 보직을 갖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공복이란 서양의 Public servant를 번역한 말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행정학은 특권이나 국가라는 그 무엇을 부정하는 무국가성(無國家性이)라는 배경에서 출발했다. 왕, 세습, 계층제, 귀족, 전통이 지배의 기제로 작용하려는 것을 의도적으로 없애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공무원은 시민들을 모시는 하인, 즉 공복으로 존재하기를 원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가복(家僕)은 있어도 공복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복대신 관청의 종이라는 뜻에서 관비(官婢)란 말이 널리 쓰여져 왔다. 예나 지금이나 관직은 매력적인 직업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고자 한다. 공무원이 되려면 어려운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들이 되고자하는 공무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군림하는 ‘나으리’의 모습일까 아니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하인’일까? 최근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시는 청와대 부속실장이 청렴을 주문하는 새 정부의 뜻(?)을 어기고 업자로부터 향응접대를 받아 물의를 일이킨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청와대 부속실장이란 자리는 이름은 거창해 보여도 그렇게 폼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일의 성격으로 보면 집사일을 하는 대통령댁의 허드렛일을 하는 일종의 가복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국민의 하인이아니라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하인일이라는 이유 때문에 직급도 1급(관리관)이다. 도의 부지사라는 자리가 1급이니 하는 일에 비해 직급이 얼마나 높은 지 알만하다. 그는 대통령의 가복일 지언정 국민의 공복은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시절 비서(부속실장) 출신으로 부통령에 오른 이기붕도 공복이었다고 할 수 없다. 공복이란 말은 해방이 되고 정부수립에 따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서구식 행정체계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을 때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제도적 특성과 본질적으로 유리된 채로 있어 왔다. 경제개발시대에 ‘발전의 역군’이라 자부하는 공무원은 ‘멸사봉공’이라는 ‘공복’의 옷을 입은 군림하는 나으리였다. 5공화국시절 국정지표는 아이러니컬하게 ‘정의사회구현’이었지만 국민이 지배의 주체가 아니라 단순히 지배의 객체였던 시절 무엇이 ‘정의’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당시 불세출의 위정자와 일부 엘리트 관료집단이었다. 공무원들은 그들의 이념적인 주인인 국민에 대한 봉사보다도 위정자에 대한 철저한 충성을 통해 보상을 받아 왔다. 그들은 국민에 대한 공복이 아니라 국민을 그들의 관비로 여긴 측면이 없지 않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그리고 참여정부의 출범과 함께 우리나라는 비로소 국민은 권력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국민을 섬기는 진정한 공복의 모습은 아직도 찾아 보기 힘들다. 권력의 주체인 시민과 통치를 위탁받은 정부가 각각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노무현 정권은 참여정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적 환경하에서 참된 공무원상은 아직도 정립되어 있지 않다. 공무원행동강령이 시행된지 며칠후에 발생한 청와대 공무원의 일탈행위는 공무원이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해야 되는 지에 관해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5공시절 정의가 무엇인지 전제하던 관료의 독단적 지배도, 요즘처럼 이익집단의 선동적 여론몰이에 휘말려 포풀리즘을 방조하는 ‘공무(空務)’도 진정한 민익의 보장을 담보할 수 없다. 군림하는 관료에서 탈피하여 국민을 지배의 주체로서 그들의 뜻을 존중하고 테크노크라트의 능력과 경험있는 전문직업인으로서의 공무원이야 말로 우리시대에 필요한 공복(公僕)이 아닐까 한다.
박용성  <행정학 전공>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