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는 신분이나 벽사의 상징

조선시대에도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 있어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는 뚫기, 소위 ''피어씽''이 유행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혀·배꼽·눈썹, 심지어 성기부위까지 뚫어 고리를 하고 다닌다고 한다. 혀나 성기부위에 고리를 단다니 막가도 한참 막가는 세상인 것 같다. 옛날 같으면 감히 있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개성시대''·''세계화시대''라 하더라도 이러한 피어씽에 대해 연세 드신 어르신들은 물론이거니와, 필자처럼 지천명(知天命)을 눈앞에 둔 세대들 역시 좋게 볼리 만무하다. 반면, 이에 대해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에 불만이다. 세대차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피어씽, 그 중에서도 남자아이들이 귀고리를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 선조때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었다. 유희춘은 이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내용을 국역해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주상께서 비망기를 승정원에 내리시기를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거나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모든 대소남아(大小男兒)들이 반드시 귀에 구멍을 뚫어 귀고리를 다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에게 기롱을 받고 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부터는 일체 힘을 다하여 오랑캐의 풍습을 혁파하여야 한다. 이 뜻을 서울과 지방에 널리 알리고, 서울은 이 달까지 기한을 주되, 혹 꺼리고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사헌부에서 엄하게 다스려 죄를 주도록 하라. 이대로 받들어 시행해야 된다''고 하셨다."
선조가 사내아이들의 귀고리 다는 풍습에 대해 엄금할 것을 명한 비망기를 기록한 대목이다. 선조의 이러한 엄금지시는 신체발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유교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고종때 일제의 강압에 의해 단발령을 시행하자, 최익현이 목을 잘릴지언정 부모님이 주신 머리칼은 자를 수 없다고 한 것과 연관된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으나 남자들이 귀고리를 다는 풍속이 있었다. 박물관에 가보면, 신라시대때 귀족계급의 남자들이 귀고리를 달았음을 알 수 있다. 이때 귀고리를 다는 이유는 신분 상징이나 벽사(僻邪)의 의미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귀고리 다는 풍속은 한 때 사라졌다가 고려말 중국 원나라의 영향으로 다시 행해져 선조때까지 유행된 것 같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선조때까지 귀고리를 달았다는 풍속은 「미암일기」에만 기록되어 있는 듯하다.
젊은이들이 귀고리를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탓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귀고리를 남도 하니까, 또 유행이니까 나도 하고 다녀야지 보다는 자신이 귀고리를 하고 다니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그 의미만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우리는 오천년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지닌 민족으로서, 서구의 문화를 무분별하게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지 한 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 것은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구한말때처럼 우리는 또다시 서구의 문명과 문화에 패배(현재 그런 추세지만)하는 것은 아닌지 각자 자성할 필요가 있다.
송재용(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
송재용  (동양학연구소 연구실장)